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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2절은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이 담긴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의 질문(18:21)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대답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용서가 갖는 무제한적 성격을 선언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1. 문자적 이해
"일곱 번뿐 아니라"
- 베드로는 앞서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21절) 하고 물었고,
이는 당시 관습보다 훨씬 관대한 수치였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의 응답은 그 수치를 부정하며 더 큰 차원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라도"
- 헬라어 원문: “ἑβδομηκοντάκις ἑπτά” → 직역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70 × 7 = 490번 - 하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정확한 횟수 제시가 아니라,
무한 용서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 유대 전통에서 7은 완전수이고, 70은 민족(창 10장) 또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70×7”은 끝없는, 완전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2. 배경과 맥락
구약적 배경
- 창세기 4:24에 라멕이 말합니다:
-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칠 배이리로다.”
이는 복수의 과장된 수치였는데,
예수님은 이를 복수의 수치에서 용서의 수치로 전환하신 셈입니다.
신약의 맥락
- 마태복음 18장 전체는 공동체 안에서 죄와 갈등의 해결,
회개와 용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 즉,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기본 태도는 ‘용서’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3. 신학적 의미
주제 의미
용서의 무제한성 | 하나님이 우리를 제한 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제한 없이 용서해야 함. |
하나님 나라의 질서 | 인간적 기준(횟수, 조건)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따라 사는 공동체. |
용서는 선택이 아닌 본질 |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 |
예수님의 가르침 요약
질문 예수님의 답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 “셈하지 말고 끝까지 용서하라.” |
“일곱 번이면 충분한가요?” | “아니다, 무한히 용서하라.” |
왜요? | “하나님이 너를 그렇게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
적용과 묵상
우리는 몇 번 용서했는가?
- 누군가 반복해서 상처를 줄 때, 우리는 세 번, 다섯 번까지만 용납하려 합니다.
-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다
- 예수님은 감정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은 믿음의 결단이자 하늘나라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참고 – 이어지는 비유: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 (마 18:23~35)
예수님은 이 말씀에 이어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책임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한 종이 주인에게 큰 빚(일만 달란트)을 탕감받았지만,
자기에게 작은 빚을 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음 →
주인이 진노하여 심판함.
이 비유는 18장 22절의 핵심 의미를 실감나게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기도문
주님,
내 마음에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무한히 용서받은 자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나도 무한히 용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 요약
항목 내용
핵심 메시지 |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셈하지 않는 용서여야 한다. |
왜 중요한가? |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
실천 방향 |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결단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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