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13절
마태복음 21장 13절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해설해드리겠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의 의도와 목적을 직접 성경 인용을 통해 설명하신 장면입니다. 매우 신학적이고 상징적인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 (개역개정)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 헬라어 원문 (Nestle-Aland 28판)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Γέγραπται· ὁ οἶκός μου οἶκος προσευχῆς κληθήσεται,
ὑμεῖς δὲ αὐτὸν σπήλαιον λῃστῶν ποιεῖτε.
2. 헬라어 구절 분석
Γέγραπται | “기록되었다” | 완료 수동 → 성경에 기록된 확정된 말씀을 강조 |
ὁ οἶκός μου | 내 집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암시) |
οἶκος προσευχῆς | 기도의 집 |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위한 공간 |
σπήλαιον λῃστῶν | 강도의 소굴 | ‘λῃστής’는 단순한 절도범이 아닌 폭력적 강도, 반역자를 뜻함 |
ποιεῖτε | 만들고 있다 | 현재 시제 → 지속적인 행위, 즉 성전을 왜곡시키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 |
3. 예수님의 인용구
예수님은 구약에서 두 본문을 인용하셨습니다.
(1) 이사야 56: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 이 말씀은 이방인조차도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보편적 구원의 비전을 말함
→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이자, 모든 백성이 기도하는 곳
(2) 예레미야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강도의 소굴로 보이느냐?”
→ 당시 유다 백성이 불의한 삶을 살면서도,
성전만 있으면 하나님의 보호가 보장된다고 착각했을 때,
예레미야가 형식적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구절
4. 신학적 메시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 성전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 기도, 회개, 예배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든다” | 인간의 욕심과 불의가 거룩한 공간을 오염시킴 |
예수님의 적용 | 구약의 심판 예언을 지금 이 상황에 직결시키심. → 성전 체제를 정죄하심 |
5. 왜 "강도의 소굴"인가?
- 단순히 장사했다는 문제가 아님
- 예루살렘 성전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부와 권력의 중심이었음
- 특히 대제사장 무리들은 환전 및 제물 판매의 수익 구조를 독점
- 외형상은 경건해 보이지만, 내면은 탐욕과 부정, 형식적 신앙
즉, 예수님은 “성전을 피난처처럼 이용하며 동시에 불의를 행하는 위선”을 강도의 행동에 비유하신 것
6. 문맥 연결 (21:12–13)
12절 |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와 제물 장사들을 내쫓음 |
13절 | 성전이 본래 어떤 장소였고,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성경 말씀으로 지적 |
→ 예수님은 행동과 말씀으로 성전의 본질을 회복시키려 하심
→ 이는 단지 “정화”가 아니라 심판 행위이며,
곧 예수님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자 중보자로 대체될 것을 암시
7. 마태복음의 구조 속 의미
-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로,
성전 중심의 경건 생활이 당시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예수님의 행위로 고발 - 이 성전은 이후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의 파괴 예언을 받고,
실제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무너짐
8. 현대적 적용
나는 예배당을 ‘기도의 집’으로 대하고 있는가? | 형식적 신앙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
나의 신앙 생활 안에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 봉사, 예배, 헌신도 자기 목적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
예수님이 지금 내 삶을 보신다면, 무엇을 엎으실까? | 위선, 탐욕, 자기의, 형식적 열심 등 |
요약 정리
마태복음 21:13은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후, 구약 성경(이사야 56:7, 예레미야 7:11)을 인용하여
성전의 본래 목적과 현재의 타락을 대조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는 절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비판이 아닌,
새 언약 시대의 도래, 즉 예수님 자신이 새로운 성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중보자로 세워질 것을 예고하는 행위입니다.
다음 절인 마태복음 21:14에서는
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온 맹인과 저는 자들이 고침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예수님이 어떤 진정한 성전 기능을 회복시키시는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