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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6장
아량아량드롱
2024. 10. 1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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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6장은 인생의 허무함과 인간의 한계를 더욱 깊이 탐구하며, 특히 부와 명예,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결국 만족을 주지 못하고 허무함에 이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 장은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갈망이 어떻게 허망함을 초래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제를 다룹니다.
1. 부와 명예의 허무함 (1-6절)
전도자는 부와 명예, 그리고 장수라는 인간이 바라는 것들이 결국 만족을 주지 못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 부의 허무함 (1-2절):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악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사 그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게 하셨으나 하나님이 그로 그것을 누리게 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며 악한 병이로다." -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재물, 부, 명예를 주셨으나 그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그것을 누리게 되는 경우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악한 병'이라고 표현하며, 부와 명예가 있어도 그로 인해 만족하거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지적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아무리 충족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 결국 헛되다는 것입니다.
- 자녀와 장수의 헛됨 (3-6절):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그의 나날이 많아서 그의 연수가 많을지라도 그의 마음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장사도 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 낫다 하였나니..." - 전도자는 자녀가 많고 장수하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지지만, 그로 인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장수와 다산이 중요한 목표로 여겨졌던 당대 사회에서, 이는 충격적인 통찰입니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이런 인생보다 낫다고 말하며, 생의 양보다 그 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제시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많은 자녀를 두어도 그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헛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2. 욕망의 끝없는 갈망 (7-9절)
전도서는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지속된다고 말하며, 그로 인해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비참함을 강조합니다.
- 끝없는 욕망 (7절):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 입을 위함이나 그의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 사람은 평생 일하고 수고하지만, 그 모든 수고의 목적은 결국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많은 것을 먹고 누려도 식욕, 즉 인간의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이는 물질적 욕망이나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만, 그러한 갈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으며 항상 새로운 욕망으로 이어집니다.
-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 (8절):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가난한 자는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나니." - 전도자는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근본적으로 욕망과 관련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자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한계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차이가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그저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며, 그의 인생 역시 만족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 현재에 만족하는 삶 (9절):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 여기서 전도자는 "눈으로 보는 것," 즉 현실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상상 속에서 더 나은 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도 결국 헛됨과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상 현실에 만족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음을 암시합니다.
3.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 (10-12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논의합니다. 전도자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하나님만이 그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말합니다.
- 운명에 대한 인식 (10절):
"이미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지어졌고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아느니라. 자기를 더 강하게 할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 여기서 "이미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지어졌다"는 말은 인간의 운명이나 인생의 흐름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거나 그것을 초월할 수 없으며, 자신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존재와 다툴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인간의 한계는 분명하며, 자신이 운명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인생의 허무함 (11절):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 많은 일이 일어나고 인간은 다양한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것이 인생에서 유익한 것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수고가 결국 허무한 결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 (12절):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생 동안에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 누가 알며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고하리요." -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지 알기 어렵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도 없다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인생은 마치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가며,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허무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요약
전도서 6장은 인간이 물질적 부나 명예, 장수를 얻더라도 그로 인해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결국 허무함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자의 결론입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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